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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 없는 결과는 없었다.

江村 2007. 12. 26. 16:48

원인없는 결과는 없었다.

 

진(秦) 나라가 거대 중국을 통일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물론 거기에는 이루 열거 하기 어려운 여러가지의 요인들이 있지만  나는 크게 두가지로 압축해 보고져 한다.

진나라는 BC  221년 부터 BC 206년까지  시황제(始皇帝)가 통일하고 그의 아들

호해(胡亥)를 거치고 호해의 아들  자영(子영) 대에 이르러 망하니 3대에 고작 15년의 역사 밖에는 없는 나라이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수많은 사람들로 부터 진나라가 회자 되고 있는 까닭은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를 종지부를 찍고 하나로 통일 했다는점과 시황제의 출생 비밀이 여불위의 계략에 의해 진나라 왕실에 자신의 피를 잉태한 조희를 자초에게 바처 결과적으로 영씨 의 왕손 계보를 여씨로 바꿔치기 한 희대의 사기극에 대한 재밋거리, 또 시황제가 천하를 통일한후 분서갱유(焚書坑儒)를 저질러 동서고금에 유래가 없는 폭군이었다는점, 그 이후 초패왕 항우(楚覇王項羽)와 한왕 유방(漢王劉邦)이 진나라를 무너뜨리고 천하를 다투는 고사등을 상기 할때 필연적으로 저 유명한 진나라를 빼고서는 이해 할수 없는 대단히 중요한 대목이기때문이다.

 

그러한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 하게 될수밖에 없었던 중요한 원인은 이렇다.

첫째는 인재를 잘 등용했던점이요

둘째는 상대국들이 (조,위,한,연,제,초) 연합하지 못했던 결과이다.

 

일찌기 진(秦)나라는 천하에 정치와 군사,부국강병에 재주있는 사람들을 유달리 다른 나라들 보다 우대하여 등용했다.

오래전 백리해는 우(虞)나라 사람으로  자신의 나라에 등용되지 못하고 우여곡절 끝에 진나라에 가서 재상에 이르렀으며 왕을 도와 나라의 정사를 잘하여 강국의 기틀을 마련 하였다.

저 유명한 법가(法家) 상앙은 본래 위(衛)나라 사람이건만 역시 벼슬을 구하지 못해 진나라에 들어가  진효공(秦孝公)을 섬기며 강력한 군현제 실시와 일벌백계식의 무시무시한 법률시행과 개혁을 단행하여 강력한 국가의 기반을 닦았다.

그런가 하면 장의(張儀) 역시 위(魏)나라 출신이건만 진나라에 등용되어 진혜문왕(秦惠文王)을 섬기며 재상에 올라 연횡책(連橫策)을 주창하여 이웃나라들이 진나라와 동맹을 맺게끔 술책을 다 부리고 안심하고 진나라가 영토를 넓히고 강국이 될수 있는 기틀을 마련 하였다.

또 그 이후 범저(范雎)는 위(魏)나라 사람인데도 제(齊)나라와 내통 했다는 역적의 누명을 쓰고 죽을 운명을 탈출하여 진나라에 들어가 승상(丞相)이 되어 원교근공(遠交近攻) 정책을 펴 진나라의 수천리 영토를 확장 했고 천하통일의 발판을 확고히 갖춘 인물이었다.

대대로 나라가 이렇게 다스려지니 자연 타국의 침공을 받지 않은 나라가 진(秦)나라이다.

그토록 크고 강하던 진(晉)나라도 셋(조,위,한)으로 갈라져 서로 다투고 오나라와 월나라는 대대로 원수져 싸웠으며 남방의 강국 초나라는 오나라에 망가진후 여러대 이후에 다시 초나라가 오나라를 평정했으며 연나라와 제나라가 전쟁하고 조나라와 연나라가 싸우는등 열국은 정신 없이 국력을 소모 할때 홀로 진(秦)나라만이 침공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 또한 국운융성의 모태가 되었던것이다.

그 밖에도 명장 백기,왕전,몽오등등 수많은 인재들이 적절하게 쓰여져 그 역할을 다했으니 진나라가 통일을 한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이것이 인재를 잘 등용 했다는 첫번째 이유이다.

 

강한자가 덤벼들면 약자들은 뭉처야 살아 남는게 고금의 이치이다.

그런대도 당시의 육국(조,위,한,제,연,초)은 연합 하지 못하고 무너졌다.

당초에 소진(蘇秦)이 합종책(合從策)을 주창 하여 6국왕의 추대를 받아 6국의 정승이 되고 진나라의 침략에 다같이 군사를 내어 대응 하도록 맹약을 맺었으나 연나라 왕후와 간통 하는등 부도덕한 행실과 제나라 정적들의 시기로 죽음을 당하자 자연히 흐지부지 되어 버렸다.

또한 제(齊) 나라는 진(秦)나라와 멀리 떨어져 있는 관계로 그다지 사태의 심각성을 등한히 하고 있었다.

그 이후에도 위(魏)나라 신릉군 ,조(趙)나라 장군 염파에 의해 수차 진나라의 침공이 주춤 한바 있으나 결정적으로 초(楚)나라 신릉군이 연합군의 맹장(盟將)이 되었으면서도 적과 싸우기를 겁내고 도망치는 바람에 각국이 군사를 거두어 돌아가니 그 이후 부터는 진나라가 모든 나라를 차례차례 함몰 시키는 결과가 초래 되었다.

훗날 강건너 불보듯 하던 제(齊)나라가 인접한 조(趙)와 위(魏)나라가 망하자 국경을 바로 맞댄 진나라에 무너졌슴은 오히려 당연한 결과였다.

당장 누구의 지휘를 받기 싫어하고 그 알량한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체 지금 당장 자기에게 위기가 닥처오지 않으면 이웃의 불행을 보고도 팔장만 끼고 도우려고 하지 안았던 이기주의적 발상을 끌어 앉은채 천하 육국은 그렇게 망해 갔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참으로 순망치한(脣亡齒寒)이란 이런 경우를 말함인가 한다.

 

육국의 영토를 합치면 그 넓이가 진나라의 너댓배에 달하고 군사를 합처도 서너배가 넘는 힘을 가지고 천하육국은 그렇게 망하고 말았으니 이것이 그 두번째 이유인것이다.

 

매사에 사람을 잘쓰고 인력을 적절하게 합치고 배분 하는 일처럼 중요 한게 없으니 ..... 역사가 이를 증명해 주고 있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