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사람들의 정치
옛적에 한다 하는 군왕들이 자신의 정책을 진실로 이해 하고 추진 할만한 인재를 구하고져 할 때에는 그야말로 정성을 기울여 예를 갖추고 모셔 갔다 한다.
일컬어 택일(擇日)하여 폐백(幣帛)을 갖추어 보내고 하늘에 제사까지 받들어 모신후 수례를 나란히 타고 궁으로 들어 갔다는 고사는 너무나도 흔한 이야기다.
만백성을 죽이고 살릴수 있는 생사여탈권을 쥔 임금이 진정 나라의 동량지재라
여겨지면 기꺼이 두번 절하고 가르침을 청했던 사례는 어찌 나만이 읽어온 내용이란 말인가?
그 옛날 노나라의 공자님이 그런 대접을 받았고
진나라는 백리해와 범저를 그렇게 예우 했으며
제나라 환공 또한 관중을 그렇게 예우 했으며
서촉의 유비는 제갈량의 초옥을 세번 찾아가 모셔 갔다 한다.
아울러 그들은 천하에 다시 없는 어진 정치를 펼처 왕과 백성에게 보답 했다.
그들은 어느나라 출신도 혈통도 따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재주 있으면 지연,학연,귀천을 가리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물론 우리 나라에도 황희와 맹사성 같은 분들이 그에 못지않은 칭송을 받는 훌륭한 인물들이라는것은 익히 들어온바다.
오늘날 대통령이 인재를 쓰고자 함에 한번도 사양하는이가 없고 대통령 또한
지극한 예로써 대하는곳이 없으니 물론 21세기 디지털 시대일지라도 너무 가볍게 여겨짐은 무슨 연유인가?
재주도 없으면서 직위를 탐하고,나라를 생가하기 보다 내사람 챙기기에 급급했던 사례가 허다 하지 않았던가?
또, 누구는 어느지역출신이요,누구는 출신 학교가 어디이며, 어디는 제외 되었느니 하는 말들 모두가 괜한 표현들 아닌가 이 말이다.
조선조 영정시대에 그 지긋지긋한 당파싸움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나마라도 나라를 보전하고 피를 덜 흘리게 하고자 밤낮을 가리지 않고 노심초사 하던 번암 채제공 선생이 왕께 주청한 정책이 "탕평책"이라 하는데 사실은 그게 그리 좋은 정책은 아닌것이다.
할수없어 그런것이지만 여북 했으면 그랬을까싶다.
이쪽에 하나면 저쪽도 하나 ~
이파에서 줄이면 저파에서도 줄이고 하는식은
그건 능력이나 재주를 도외시한 처사이다.
곡식을 가꾸는 농부를 보라!
우수한 씨앗을 골라 심으며 이미 심겨진 싹도 시원찬은것은 뽑아내고 튼실한것으로 다시 심는다.
그때 어느 밭의것, 어느 고랑의것을 따지던가?
하물며 농부도 그러 한데 나라의 정치를 말함이랴 !
지금은 조선시대가 아니요 왕을 허수아비로 만드는 권신들의 나라가 아니다.
자손 대대로 물려 주어야할 조상님들이 내려주신 소중한 나라이기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