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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사람들에게

江村 2007. 12. 20. 14:53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후한(後漢)시절에 광무황제가 군사를 일으켜 천하의 주인이 되었다.

물론 잠시 왕망이 훔처 갔던 천하였으니 한고조 유방이 세웠던 유씨 세상을 비로서 광무황제가 되찾아 온것이었다.

헌데, 황제의 둘도 없는 친구 엄자릉은 홀연히 부춘산으로 은거해 버렸다.

황제는 여러차례 그를 벼슬로서 불렀으나 불응하고 한낱 낙시질로 세월을 보냈는데 그는 정치도 권세도 싫다고 했다.

엄자릉...그는 자유인으로 그렇게 사라져 갔다.

벼슬도 부귀영화도 그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아니라 하였다.

 

그 보다 더 오래전 주나라 초기에 백이숙제는 저 유명한 주무왕이 은(殷)나라 주왕(紂王)의 무도함을 첬을때 말고삐를 붙잡고 어찌 신하가 임금을 칠수 있느냐고 한사코 간하다 아니되자 벼슬을 버리고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먹으며 일생을 마첬다는 고사는 귀에 딱찌가 앉을정도로 들은 이야기다.

 

또 고려왕조가 말기현상을 보일때 백성의 삶은 피폐해지고 관리들은 부패하고

왕은 무능하여 밤낮을 분간 못할정도로 어지러워지자 급기야 이태조가 혁명 하여 조선국을 건국하고 새로운 정치를 모색 하였으나 이때에도 역시 충신불사이군의 대의명분을 내걸고 벼슬과 출세를 버리고 은둔낙향한이가 대표적 인물만 해도 칠십여인이니 세상은 그들을 두문동 칠십이현이라 불러온다.

 

회고 하건대 

한무제(漢武帝)만큼 현명한 군주도 없었으며

주무왕(周武王)만큼 어진 임금도 없었으며

이태조만큼 �은 세상을 바로잡은 군왕도 드물었다.

 

그러면 어째서 한나라 엄자릉과 주나라 백이형제와 고려의 충신들은 세상을 등진것일까?

하나 같이 어진정치와 좋은 일을 해 나갔던 임금들한테 왜 그런것일까?

 

그 점에 대하여 정답이 될런지는 몰라도 나는 적어도 이렇게 생각해 본다.

인생에 있어 참된 선비라면 부귀영화가 그다지 중요하다 생각지 않는다.

그러므로 벼슬이란게 지사나 참된 인사라면 평상시 가슴 깊이 새겨 두었던 의지와 맞지않는 일을 강요 받았을때 ... 그것은 귀찮은 장애물에 불과한것이다.

물론 그 옛날의 충효사상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 하는 가치적 기준을 가지고 있던 시절이었으니 의리를 목숨 처럼 중시 했을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빼 놓을수 없는것은 진정 군자라면 구태여 주인을 찾아가 자리를 구걸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요즘 우리나라는 새로운 대통령  당선자에게 거는 기대감 또한 그 어느때 보다 크기만 하다.

수를 혜아릴수 없이 많은이들이 그분을 도왔고, 오늘이 있게한 공로 있는분들이 꽤나 많을것이다.

혹시나 한자리 얻어 할까 하는 마음으로 당선자의 시선을 기다리고 전화기를 놓지 못하고 주위를 배회 하는 사람들이 구름 같겠지....

 

진나라 개자추는 무려 19년간이나 진문공 중이를 망명길을 모시고 따라 다니며 자신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 주군께 먹이고서도 정작 주인이 왕이 되어 귀국 하였을때 면산에 은둔한 고사를 그들에게 말한다면 귀에 들리려나 모르겠다.

 

논공행상이 이루어지겠지...

그러나 진정한 인물이라면 쓰고져 하는분이 골라 쓸수 있도록 기다려야 옳을것이며 그렇지 않거든 그냥 물러가야 옳지 않겠나싶다.

물론 주나란엔 강태공이 쓰여졌고 조선국초엔 황희가 등용 되었지만 ...

나는 이참에 누가 단 한명이라도 명산에 숨을것인지 그것이 궁굼 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