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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강공 윤언이

江村 2008. 1. 19. 18:59

문강공 윤언이

 

문강공(文康公) 윤언이(尹彦이)는 만년에 더욱 좌선(坐禪)의 취미를 붙여 벼슬을 그만두고 영평군(鈴平郡) 금강재(金剛齋)에 은거 하며 스스로 금강거사(金剛居士)라 불렀다.

매양 성을 드나들적에 황소에 걸터 앉아 출입 하니 모든 사람들이 그를 알아 보았다.

 

혜소(慧炤)의 제자 관승선사(貫乘禪師)와 벗이 되었는데 두사람이 서로 마음이 심히 맞았다.

당시 관승은 광명사(廣明寺) 주지(住持)로 있으면서 풀로 지붕을 이은 암자(庵子)를 짓고

둘이 한좌석에 겨우 앉아 약속해 말하기를

" 먼저 가는자는 이곳에 앉아 있으면 죽어 변전(變轉)한다! " 하였다.

 

어느날 윤언이는 황소를 타고 관승에게 가서 식사를 같이 했다.조금 있다가 말 하기를

" 내가 죽을때가 머지 않았소 ! 작별을 고하러 왔을뿐이오. " 했다.

 

말을 마치고 곧장 돌아 가는데 관승은 사람을 시켜 그 뒤를 따르게 하고 암자에서 전송을 하니

윤언이가 보고 웃으며 이르기를

선사는 약속을 저버리지 안았소 그려 내 갈길은 결정 되었소이다!

 

하고는 갑자기 붓을 들어 게송(偈頌)을 써 말했다.

 

           春復秋兮  (춘복추혜)  봄이 다시 가을로 바뀌니

         花開葉落  (화개엽락)  꽃이 피고 잎이 떨어지도다

         東復西兮  (동복서혜)  동쪽이 다시 서로 바뀌니

         善養眞君  (선양진군)  조물주를 잘 봉양 하도다

         今日途中  (금일도중)  오늘 길을 가는 도중에

         反觀此身  (반관차신)  이 몸을 돌이켜 보라

         長空萬里  (장공만리)  끝없이 길고도 먼 하늘에

         一片閑雲  (일편한운)  한 조각 한가로운 뜬 구름이로다.

 

쓰기를 마치고 암자에 앉아 죽으니 당시 벼슬 하지 아니한 고결한 사람과 계행(戒行)을 지키는 사람은 슬퍼하고 우러러 사모 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 자료 : 보한집 (補閑集) -

 

윤언이 : 본관은 파평(坡平),호는 금강거사(金剛居士) 문하시중 관(瓘)의 아들이다.

고려 인종때 과거에 급제 기거랑(起居郞)이 되고 송나라에 사신을 행했으며 국자사업,보문각직학사,양주방어,廣州목사,정당문학을 역임했다.

1149년 의종 3년에 졸하니 왕이 3일간 조회를 정지 했다.

문장에 능했고 특히 주역(周易)에 밝았으며 불교에 심취했다, 시호를 文康이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