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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사 전설
江村
2008. 2. 9. 17:33
이능화(1868 ~ 1945 )선생의 역저 조선여속고(朝鮮女俗考)에 이런 슬픈 내용이 실려 있다.
조선여속고에는 우리나라에 실존 했던 유명한 여인들의 시와 문장과 효부,열녀등에 관한 일체의 내용들이 수록 되어진 역작이다.
물론 이 내용은 오래전 어느 TV 방송에서 " 전설의 고향 " 으로 방영 되었던 내용인데 그건 이 책을 참고했던것이다.
이능화 선생의 기록을 그대로 옮기니 이러하다.
*** 영남루(嶺南樓) 에 얽힌 비화 ***
중종(中宗) 명종(明宗)간의 윤낭자(尹娘子)는 경성(京城)의 사족(士族)이었다.
부(父) 윤모(이름을 밝히지 않았슴)가 밀양부사(密陽府使)가 되어 식솔을 거느리고 부임함에 그녀도 따라갔다.
나이 겨우 열여섯 밖에 되지 않았으나 자태가 매우 아름다우며 성품이 정숙 하�다.
소학(小學)과 여사(女史) 제편(諸篇)을 잘 깨닫고 있었다.
밀양부의 지인(知印:벼슬아치)이 그녀를 몰래 좋아 하더니 은밀히 많은 뇌물을 그녀의 유모에게 주어 완월(翫月:달구경) 한다고
그녀를 영남루(嶺南樓)에 꾀어 내게 하였다.
유모는 깊은 밤에 낭자를 데리고 누상에 올랐다.
누(樓)는 산 윗쪽에 있는데 대나무 숲으로 빽빽이 둘러 쌓여 있었다.
그날 밤은 달이 밝은 보름이었다.
지인은 대나무 숲에 숨었다가 갑자기 일어나 어정어정 올라왔고 유모는 어느틈엔가 피하여 버렸다.
혼자남은 낭자는 문득 어찌된 일인지를 몰랐다.
지인이 낭자를 껴안고 범하려 하자 죽음을 무릅쓰고 듣지 않으니 그는 일이 여의치 않음을 알고 칼로 낭자의 한쪽 팔을 베었다.
낭자가 남은 한족 팔로 저항하자 지인은 낭자의 목을 베어 대숲 속에 던졌다.
낭자의 집에서는 사실의 어찌됨을 몰랐다.
명종때에 이를 알고 두루 수색 하였으나 어찌 할수 없었다.
사람들은 그녀가 음란 하였다고 헛소문을 내었다.
이에 윤부사는 부끄럽게 여기어 벼슬을 그만두고 돌아 갔다.
그 후부터 사객(使客 : 조정사신)으로 밀양을 지나던 이가 왕왕 영남루에서 묵다가 횡사(橫死) 하였고 부사로 부임하여 온 이도
많이 죽었으므로 누(樓)를 폐하고 다시는 객관을 열지 아니 하였다.
이진사(李進士) 아무가 밀양을 지나다가 이 일을 듣고 일부러 누(樓)에서 유숙 하였다.
야반(夜半)에 문득 거센 바람이 불어와 촛불을 덮치더니 울음소리가 대나무숲으로 부터 들려 왔다.
한 여자가 칼에 맞은 목으로 붉은 기(朱旗) 를 손에 들고 앞에 와 섰다.
이진사가 따져 묻기를 " 너는 어찌된 귀신이냐 " 라고 하였다.
그녀는 울면서 사실을 다 호소 하더니 다시 울면서 " 오랜동안 원수를 갚으려 하였으나 아직 때를 얻지 못하던중에 이제 요행히도 공(公)을 만나 저는 원수를 갚게 되었습니다 " .
그 도적이 아직도 아무 벼슬에 있나이다 하고는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명종(明宗)이 이 일을 부사에게 통고하여 관속명부(官屬名簿)를 살피게 한바 과연 주기(朱旗)라는 성명을 가진자가 있었다.
이를 잡아다가 심문 하니 머리를 떨구면서 죄를 자백 하�다.
법에 따라 이를 사형에 처하고 사당을 세워 그녀를 제사 지내니 오늘에 이르도록 영남루 아래 쪽대나무숲 속에 아랑사(阿娘祠)가 있다.
- 자료 : 李能和의 朝鮮女俗考 중 奇聞叢話 -
조선여속고에는 우리나라에 실존 했던 유명한 여인들의 시와 문장과 효부,열녀등에 관한 일체의 내용들이 수록 되어진 역작이다.
물론 이 내용은 오래전 어느 TV 방송에서 " 전설의 고향 " 으로 방영 되었던 내용인데 그건 이 책을 참고했던것이다.
이능화 선생의 기록을 그대로 옮기니 이러하다.
*** 영남루(嶺南樓) 에 얽힌 비화 ***
중종(中宗) 명종(明宗)간의 윤낭자(尹娘子)는 경성(京城)의 사족(士族)이었다.
부(父) 윤모(이름을 밝히지 않았슴)가 밀양부사(密陽府使)가 되어 식솔을 거느리고 부임함에 그녀도 따라갔다.
나이 겨우 열여섯 밖에 되지 않았으나 자태가 매우 아름다우며 성품이 정숙 하�다.
소학(小學)과 여사(女史) 제편(諸篇)을 잘 깨닫고 있었다.
밀양부의 지인(知印:벼슬아치)이 그녀를 몰래 좋아 하더니 은밀히 많은 뇌물을 그녀의 유모에게 주어 완월(翫月:달구경) 한다고
그녀를 영남루(嶺南樓)에 꾀어 내게 하였다.
유모는 깊은 밤에 낭자를 데리고 누상에 올랐다.
누(樓)는 산 윗쪽에 있는데 대나무 숲으로 빽빽이 둘러 쌓여 있었다.
그날 밤은 달이 밝은 보름이었다.
지인은 대나무 숲에 숨었다가 갑자기 일어나 어정어정 올라왔고 유모는 어느틈엔가 피하여 버렸다.
혼자남은 낭자는 문득 어찌된 일인지를 몰랐다.
지인이 낭자를 껴안고 범하려 하자 죽음을 무릅쓰고 듣지 않으니 그는 일이 여의치 않음을 알고 칼로 낭자의 한쪽 팔을 베었다.
낭자가 남은 한족 팔로 저항하자 지인은 낭자의 목을 베어 대숲 속에 던졌다.
낭자의 집에서는 사실의 어찌됨을 몰랐다.
명종때에 이를 알고 두루 수색 하였으나 어찌 할수 없었다.
사람들은 그녀가 음란 하였다고 헛소문을 내었다.
이에 윤부사는 부끄럽게 여기어 벼슬을 그만두고 돌아 갔다.
그 후부터 사객(使客 : 조정사신)으로 밀양을 지나던 이가 왕왕 영남루에서 묵다가 횡사(橫死) 하였고 부사로 부임하여 온 이도
많이 죽었으므로 누(樓)를 폐하고 다시는 객관을 열지 아니 하였다.
이진사(李進士) 아무가 밀양을 지나다가 이 일을 듣고 일부러 누(樓)에서 유숙 하였다.
야반(夜半)에 문득 거센 바람이 불어와 촛불을 덮치더니 울음소리가 대나무숲으로 부터 들려 왔다.
한 여자가 칼에 맞은 목으로 붉은 기(朱旗) 를 손에 들고 앞에 와 섰다.
이진사가 따져 묻기를 " 너는 어찌된 귀신이냐 " 라고 하였다.
그녀는 울면서 사실을 다 호소 하더니 다시 울면서 " 오랜동안 원수를 갚으려 하였으나 아직 때를 얻지 못하던중에 이제 요행히도 공(公)을 만나 저는 원수를 갚게 되었습니다 " .
그 도적이 아직도 아무 벼슬에 있나이다 하고는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명종(明宗)이 이 일을 부사에게 통고하여 관속명부(官屬名簿)를 살피게 한바 과연 주기(朱旗)라는 성명을 가진자가 있었다.
이를 잡아다가 심문 하니 머리를 떨구면서 죄를 자백 하�다.
법에 따라 이를 사형에 처하고 사당을 세워 그녀를 제사 지내니 오늘에 이르도록 영남루 아래 쪽대나무숲 속에 아랑사(阿娘祠)가 있다.
- 자료 : 李能和의 朝鮮女俗考 중 奇聞叢話 -